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이것도 잘해야 하고, 저것도 잘해야 한다." 저는 오랫동안 그 생각을 '성실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이 사실은 저를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게 만드는 함정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선택과 집중 — 이 단순한 말이 제 삶에 들어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글은 '다재다능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믿음을 내려놓은 뒤, 제 일상이 어떻게 조금씩 달라졌는지를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6개월 전의 나는 이랬습니다
6개월 전의 저는 매일 아침 할 일 목록을 15~20개 씩 적었습니다. 글쓰기, 영어 공부, 운동, 유튜브 기획, 사이드 프로젝트, 독서… 그것들을 모두 '오늘 안에' 해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3~4개밖에 못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판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15개 중 3개를 해냈으면 충분히 생산적인 하루인데, 왜 저는 그것을 '실패'로 기록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저는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꽤 오래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봤습니다. 학교 성적도, 운동도, 대인관계도, 예술적 감각도 — 전부 갖춰야 비로소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한 형태로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자신이 믿는 것을 확인해주는 증거만 골라서 봅니다. 저는 '다재다능한 사람'이 성공한 사례만 기억했고, 한 가지에만 집중한 사람이 더 깊이 있는 성취를 이룬 사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예상 가능합니다. 15개의 할 일 중 아무것도 깊이 있게 하지 못했습니다. 글쓰기를 30분 하다가 영어 앱을 켰고, 영어를 하다가 운동 영상을 보다 잠이 들었습니다. 매일 시작만 있고 마무리가 없는 하루들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그것을 '의지력 부족'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전환점: "잘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하려는 거야"
전환점은 어느 날 밤, 메모장을 들여다보다 생긴 작은 의문에서 시작됐습니다.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이 중에서 뭐가 늘었지?"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눈에 띄게 늘지 않았습니다. 영어도 제자리, 글쓰기도 제자리, 운동도 제자리. 열심히 했는데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걸까요.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조금씩 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이 문장을 어딘가에서 읽었을 때, 처음엔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그건 너무 극단적인 말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제 메모장을 다시 보니, 부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정말로 모든 것을 조금씩 하고 있었고, 그 결과 아무것도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하루 1시간 아무것도 안 하기 실험을 해보면서, 저는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습니다. 쉬는 것도 선택이고,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그 경험이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제 안에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그중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뭐지?"
그 질문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는, 무엇을 '선택'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선택한다는 건 나머지를 포기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뭔가 '덜 성실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믿음이었습니다. 해체해야 할 믿음 중 하나였습니다.
선택과 집중 이후, 구체적으로 달라진 것들
저는 결국 '글쓰기'를 선택했습니다. 이 블로그가 그 결과물입니다. 영어 공부는 잠깐 내려놓았고, 유튜브 기획은 일단 멈췄습니다. 운동은 최소한으로만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최소 1시간은 글쓰기에만 집중했습니다.
처음 한 달은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이러다 영어 다 잊어버리는 거 아닐까?' '유튜브 안 하면 뒤처지는 거 아닐까?' 그 불안은 꽤 컸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밀어붙이는 대신, 그 불안을 그냥 옆에 두기로 했습니다. 언러닝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것처럼,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두려움과 공존하는 법을 택한 겁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 달라진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치로 말하자면:
- 블로그 포스팅 수: 3개월간 24편 (이전 6개월 동안은 5편)
- 하루 평균 글쓰기 시간: 72분 (이전에는 30분도 집중하지 못함)
- 밤에 스스로를 비판하는 일: 눈에 띄게 줄어듦 (주 5~6회 → 주 1~2회)
- 아침에 느끼는 명확함: 할 일이 15개에서 3개 이내로 줄었고, 그 3개를 실제로 해냄
숫자보다 더 크게 달라진 건 태도였습니다. 이전의 저는 매일 밤 '오늘도 부족했다'는 감각으로 잠들었습니다. 지금은 '오늘 할 것을 했다'는 감각으로 잠들 때가 많습니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의 변화라고 설명합니다. 자기효능감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15개 중 3개를 하면 자기효능감이 낮아지지만, 3개 중 3개를 하면 자기효능감이 높아집니다. 목표의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대화 중에도 머릿속으로 '오늘 못 한 것'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화에 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실제로 듣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이것도 작은 변화 같지만, 저에게는 꽤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들 — 솔직하게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면 거짓말이 됩니다. 아직도 새로운 것이 눈에 띄면 '나도 저거 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충동이 올라옵니다. 특히 누군가 '요즘 이거 하니까 너무 좋더라'고 말할 때, 그 충동이 더 강하게 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자극이 '나는 하나에 집중한다'는 현재의 믿음과 충돌할 때 생기는 불편한 감각입니다.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 새 자극을 무시하거나, 기존 믿음을 바꾸거나. 저는 아직도 가끔 새 자극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또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려놓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가끔 옵니다. 영어 공부를 멈춘 뒤, 영어로 된 영상을 보다가 '내가 이걸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아쉬움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다시 '다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언러닝은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같은 믿음이 다른 얼굴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느 정도 해체됐다고 생각한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 다시 살아나기도 합니다. 지금 저는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늘의 질문 — 함께 생각해볼 것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 지금 당신의 '할 일 목록'에는 몇 개가 있나요?
- 그 중에서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몇 개인가요?
- 만약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노트에 써보세요. 쓰면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도 함께 적어보세요.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딱 하나'에만 집중해보세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에 주목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비슷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어떤 분은 댓글에 "저도 할 일 목록이 20개였어요, 지금은 5개로 줄였어요"라고 써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선택이 무서워서 아직 못 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나눠주셨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저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다재다능 함정'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드시나요, 아니면 이미 하나를 선택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댓글로 나눠주시면 함께 읽겠습니다. 판단 없이, 그냥 같이 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이 블로그를 쓰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완벽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할 일 목록에서 딱 하나를 지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선택과 집중을 하면 다른 능력들이 퇴보하지 않나요?
A. 짧은 기간 동안은 특정 영역에서의 발전 속도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조금씩 하는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택과 집중은 '나머지를 영원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기에 무엇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때 다음 것을 추가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결정하나요?
A. 선택이 어려운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간단한 방법 한 가지를 드리자면, 지금 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하지 않으면 가장 아쉬울 것'을 골라보세요. 흥미나 열정보다 '이걸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감각이 더 안정적인 선택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완벽한 선택을 찾기보다 일단 하나를 골라 2~4주 집중해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Q. 다재다능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A.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의 경우 '의식적으로 하나에만 집중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약 1~2주, 그 구조가 자연스러워지는 데 약 2~3개월이 걸렸습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모든 걸 잘해야 한다'는 믿음 자체를 인식하고 의문을 품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 믿음이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언러닝의 첫 단계입니다.
Q. 직장이나 학업처럼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하는 환경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가요?
A. 모든 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것'과 '성장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직장이나 학업처럼 의무로 해야 하는 것들은 유지하되, 그 외의 시간에서만큼은 하나에 집중하는 구역을 만들어보세요. 하루 30분이라도 한 가지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다재다능 함정'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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