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외향인, 타고난 게 아닐 수 있는 이유

내향인 외향인, 타고난 게 아닐 수 있는 이유

혹시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저 원래 내향인이에요"라고 먼저 말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심지어 그 말을 하면서 묘하게 안도했습니다. 내향인 외향인이라는 틀이 나를 설명해주는 동시에, 나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정당화해주는 방패가 되어준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낯선 질문과 마주쳤습니다. "그 말은 진짜일까, 아니면 내가 믿고 싶은 것일까?" 오늘은 그 질문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 믿음이 작동하는 순간 —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면은 이렇습니다. 회사 워크숍 첫날,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입니다. 사회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최대한 많은 사람과 이야기해보세요!"라고 외칩니다. 음악이 켜지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잠시 굳어버립니다. 눈은 바쁘게 돌아가고, 속으로는 '나 원래 이런 거 힘들어. 나 내향인이잖아'라는 문장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벽 쪽으로 이동합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그 동작은 이미 수십 번 반복된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 저를 움직인 건 불안이었지만, 그 불안에 이름을 붙인 건 "나는 내향인"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행동을 정당화하고, 정당화된 행동이 믿음을 강화합니다. 이 순환은 의외로 조용하고, 의외로 강력합니다.

혼자 생각에 잠긴 사람, 내향인 외향인 성격 고민
우리는 종종 이름이 붙은 틀 안에서 스스로를 설명한다. (Photo: Unsplash)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 믿음의 발굴

제가 처음 MBTI를 접한 건 대학교 1학년, 2015년이었습니다. 결과는 INFJ였고, 저는 그 설명을 읽으며 '이게 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희귀한 유형이라는 말에 묘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이후 9년 동안, 저는 MBTI를 자기소개서의 한 줄처럼, 때로는 한계를 설명하는 면죄부처럼 써왔습니다.

"저 사람들 많은 데 힘들어요 — 저 내향인이거든요."
"발표보다 글이 편해요 — 성격상 그래요."
"먼저 다가가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 문장들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말했는지, 한 번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저는 성격을 설명한 게 아니라 성격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을 피한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에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정보만 골라 수집하는 경향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내향인이야'라고 믿는 순간부터 내향적으로 행동한 기억만 떠오르고, 외향적으로 행동한 수십 번의 경험은 '예외'로 처리됩니다. 저는 9년 동안 그 필터를 끼고 살았습니다.

"나는 원래 이래"라는 문장은 자기 이해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자기 포기의 다른 이름이다.

이 믿음은 사실인가? — 소크라테스식 심문

언러닝에서 제가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믿음을 심문하는 것입니다. 부드럽게, 그러나 끝까지. 마치 탐정이 증거를 요구하듯이요. 이 방식은 핵심 믿음을 파헤치는 자기탐구 워크시트 5단계에서도 구체적으로 다뤘는데, 오늘은 이 믿음에 직접 적용해보겠습니다.

Q1. 이 믿음은 어디서 왔는가?

MBTI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건 2010년대 후반입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2019~2020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퍼졌는데, 취업 준비생과 20대를 중심으로 자기소개의 공식 언어가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 어릴 때부터 "넌 조용한 애야", "넌 혼자 노는 걸 좋아하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MBTI는 그 말들을 '과학'처럼 포장해주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내향인 외향인 짤이나 인터넷 밈들도 이 믿음을 강화하는 데 한몫했다는 겁니다. "내향인이 파티에서 살아남는 법", "외향인이 이해 못 하는 내향인의 세계" 같은 콘텐츠는 유머러스하지만, 동시에 내향인과 외향인이 근본적으로 다른 종(種)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Q2. 이 믿음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여기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심리학자 루크 스마일리(Luk Smillie) 연구팀은 2016년 실험을 통해 스스로를 내향인이라고 분류한 참가자들에게 "외향적으로 행동해보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내향인 참가자들도 외향적으로 행동했을 때 더 긍정적인 감정을 보고했으며, 외향인과 유사한 수준의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이 연구는 2016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되었습니다.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알리사 크리스타키스(Alison Wood Brooks) 교수의 연구에서는, 사회적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흥분(excitement)'으로 감정을 재해석한 사람들은 실제로 더 외향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요컨대, 내향적 행동의 상당 부분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불안에 대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저 자신도 해봤습니다. 몇 년 전, 낯선 도시에서 혼자 여행하며 카페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3시간 동안 다섯 명과 이야기를 나눴고, 집에 오는 길에 묘하게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내향인은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진된다'는 공식이 흔들린 순간이었습니다.

Q3. 이 믿음은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솔직히 말하면, 꽤 많은 것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발표 기회를 거절한 것, 사람들 앞에서 먼저 손을 들지 않은 것, 네트워킹 행사에서 일찍 자리를 뜬 것. 모두 "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문장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그 문장은 편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함이 쌓인 자리에는, 해보지 않은 경험들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Q4. 이 믿음 없이 산다면 어떨까?

이 질문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내향인이라는 정체성을 내려놓으면, 그 불안과 어색함의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봤습니다. 책임이 아니라 가능성의 귀환이라고. 믿음이 없다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변화와 성장을 상징하는 빛, 성격 바꾸기 가능성
믿음을 내려놓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되찾는 것이다. (Photo: Unsplash)

그때 나는 깨달았다 — 핵심 전환점

전환점은 생각보다 소박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어느 저녁, 저는 우연히 내향인 외향인 관상 차이를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멈칫했습니다. 영상은 "눈의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왔습니다.

내향인 외향인 관상이나 외모로 성격을 판단한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MBTI도 어쩌면 그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MBTI는 관상보다 훨씬 정교한 심리 도구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과학으로 대하지 않고, 운명처럼 대해왔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심리학에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뇌는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과 생각에 따라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기관이라는 뜻입니다. 어릴 때 형성된 신경 회로가 강하게 자리잡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영원히 고정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Stanford 대학교의 Carol Dweck 교수가 30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자체가 실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내향인과 외향인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입니다. 심리학자 아담 그랜트(Adam Grant)는 "인구의 약 50%가 내향성과 외향성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는 '양향인(Ambivert)'에 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내향인 외향인 이향인이라는 엄격한 이분법보다, 우리는 훨씬 더 넓은 스펙트럼 위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직접 경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이 많은 파티보다 소규모 모임을 선호하지만, 무대 위에서 발표하는 것을 배우고 나서는 그것에서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는 더 충만해집니다. 이런 저는 내향인일까요, 외향인일까요?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틀렸을지 모릅니다.

이 과정을 더 체계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역할극 심리로 내 믿음을 검증하는 행동실험 방법을 시도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내향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정말 '나의 본성'인지, 아니면 학습된 패턴인지를 직접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향인이야"가 자기 이해라면, 그것은 힘이 됩니다.
하지만 "나는 내향인이니까 할 수 없어"가 된다면, 그것은 감옥입니다.

당신의 믿음을 찾는 질문 3가지

지금 잠깐,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떠오르는 것을 적어보세요.

  • 질문 1. "저 원래 ~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그 문장 뒤에 어떤 행동을 피했나요?
  • 질문 2. 나의 성격 유형(MBTI, 혈액형, 띠 등)이 '사실'이라는 근거로 무엇을 들 수 있나요? 반대 증거는 있나요?
  • 질문 3. 만약 내일부터 그 성격 유형 라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다르게 시도해볼 것이 하나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질문들은 당신을 바꾸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이 스스로에게 씌운 틀을 잠깐 옆에 내려놓고, 그 안에 진짜 어떤 사람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믿음 해체는 자기 비판이 아니다 — 마무리

이 글을 쓰면서 저는 MBTI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MBTI는 자기 이해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격 유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쩌면 변화보다 예측 가능성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문장은 세상의 복잡함을 줄여줍니다. 그 편함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편함이 필요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 저 역시 잘 압니다.

하지만 언러닝은 그 편함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작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뒤에도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나는 왜 이 믿음이 필요했을까?"라는 질문은 자기 공격이 아닙니다. 오히려 깊은 자기 자비(Self-compassion)에서 출발하는 탐구입니다.

내향인 외향인 차이를 따지는 것보다, 저는 이 질문이 더 흥미롭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를 얻고,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를 잃는가?" 그 답이 MBTI의 한 글자보다 훨씬 정확하게 당신을 설명해줄 겁니다.

오늘의 언러닝: 나는 내향인 혹은 외향인이기 이전에, 아직 다 탐험되지 않은 사람이다.

❓ 자주 묻는 질문

Q. 내향인과 외향인은 타고난 것인가요, 바뀔 수 있는 건가요?
Q. MBTI를 완전히 무시해야 하나요?
Q. 내향인 외향인 차이를 외모나 관상으로 알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Q. 내향인인데 억지로 외향적으로 살아야 하나요?
Q. 양향인(Ambivert)이란 무엇이고, 나는 해당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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