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적 있으신가요? 블로그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게 벌써 1년도 더 됐는데, 아직도 첫 글을 올리지 못한 채 '초안 폴더'만 가득 쌓여가는 경험. 저는 그게 정확히 3년이었습니다. 완벽주의 블로거가 되겠다는 꿈을 꾸면서, 정작 단 한 줄도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 채 말이죠.
오늘은 그 3년의 침묵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침묵을 깨게 됐는지를 솔직하게 써보려 합니다. '완전히 극복했다'는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지금도 글을 올릴 때마다 손이 떨리는 사람이 쓰는 이야기입니다.
3년 전의 나 — 글은 쓰는데 왜 올리지 못했을까?
2021년 초, 저는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노트북을 열고, 플랫폼을 정하고, 도메인 이름도 세 개쯤 후보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문제는 글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 컴퓨터 안에는 당시에도 초안이 23개나 있었습니다. 쓰는 건 했어요. 올리는 게 안 됐죠. 올리려고 하면 반드시 이런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이 글은 아직 부족해. 조금만 더 다듬으면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는 끝이 없었습니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됐습니다. 어떤 초안은 제가 무려 11번이나 고쳤습니다. 그리고 결국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어요. "아직 완벽하지 않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저는 글쓰기가 두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진짜 두려워한 것은 '불완전한 내가 세상에 노출되는 것'이었습니다. 글은 핑계였고, 완벽주의는 제가 그 두려움을 포장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완벽주의 블로거의 두려움, 왜 이렇게 뿌리 깊을까?
심리학에는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 반응 패턴, 즉 우리가 이유도 모르면서 반사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들입니다. 완벽주의는 대부분 이 암묵적 기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잘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합니다. 시험을 100점 맞았을 때, 발표를 실수 없이 마쳤을 때, 숙제를 가장 꼼꼼히 해서 선생님께 칭찬받았을 때. 뇌는 학습합니다. '완벽해야 인정받는다'는 공식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반복 학습한 거죠.
심리학자 Brené Brown은 그의 저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Rising Strong)》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벽주의는 자기 보호의 한 형태다. 우리는 완벽하면 비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그가 10년에 걸쳐 진행한 연구에서, 완벽주의적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창작 활동을 회피하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약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저에게 블로그는 그 완벽주의의 전쟁터였습니다. 글은 저 자신의 연장선이었고, 불완전한 글을 올리는 것은 불완전한 나를 전시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글쓰기 두려움'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히는 '나 자신을 드러내는 두려움'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작동합니다. 한번 '이 글은 아직 부족해'라는 믿음이 생기면, 뇌는 그 믿음을 증명하는 증거만 모읍니다. 문장 하나가 어색하면 "역시 부족하지", 논리가 조금 빈틈이 있으면 "역시 아직이야". 반대로 잘 쓴 문단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저를 초안 폴더 속에 가뒀던 메커니즘이었습니다.
무엇이 달라지기 시작했는가? — 전환점이 된 두 가지 순간
변화는 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용기가 생긴 것도 아니었어요. 두 가지 작은 사건이 조금씩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균열: 누군가의 '불완전한 첫 글'
2023년 봄, 저는 우연히 어떤 블로거의 첫 번째 글을 읽었습니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았고, 구조도 다소 산만했습니다. 그런데 댓글이 47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요", "저도 같은 고민을 했어요"라고 썼습니다. 그 블로거는 지금 월 방문자 8만 명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완벽한 글이 사람을 모으는 게 아니구나. 솔직한 글이 사람을 모으는 거구나.'
두 번째 균열: 내 믿음을 직접 써보기
저는 그 무렵 제 오래된 믿음 하나를 노트에 써봤습니다.
"나는 완벽하게 마무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물었습니다. "이 믿음은 언제부터 생겼는가?" "이 믿음은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줬는가?" "이 믿음 때문에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 질문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잃은 것의 목록이 너무 길었거든요. 3년이라는 시간, 23개의 초안, 그리고 수백 번의 "언젠가는 올려야지"라는 미루기. 저는 그때 처음으로 내 믿음이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언러닝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내가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에 처음으로 물음표를 붙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 글을 올리게 된 이후
2024년 1월, 저는 드디어 첫 글을 올렸습니다. 정확히는 '올렸다'기보다 '눈 감고 버튼을 눌렀다'에 가깝습니다. 올리고 나서 30분 동안은 블로그 탭을 열지 못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 1: 글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
처음에는 글 하나를 완성하고 게시 버튼을 누르기까지 평균 5일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1.5일 내외입니다. 글의 질이 낮아진 게 아닙니다. 제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뇌에 반복 훈련시킨 결과입니다.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바로 이겁니다. 반복된 새로운 행동이 뇌의 연결 회로 자체를 바꿉니다. 처음에는 의지력이 필요했던 것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자연스러워집니다.
달라진 것 2: 독자와의 연결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불완전한 글'에 오히려 더 많은 반응이 왔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실수를 인정한 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쓴 글에 독자분들이 더 깊이 공감해줬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정기 구독자가 200명을 넘었고, 댓글에서 "저도 같은 고민을 해봤어요"라는 말을 30회 이상 받았습니다.
완벽한 글은 독자를 감탄하게 합니다. 하지만 솔직한 글은 독자를 연결시킵니다. 저는 연결이 필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도 그랬습니다.
달라진 것 3: 나 자신에 대한 태도
글을 올리면서 제가 예상치 못하게 얻은 것이 있습니다. '나는 잘하는 것이 없다'는 오래된 믿음(B-003)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경험상, 불완전하더라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강력한 자기 효능감 훈련입니다. 심리학자 Albert Bandura가 제시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이론에 따르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내가 직접 해냈다"는 경험의 누적입니다. 이론이 아닌 실제 행동이 믿음을 바꾸는 거죠.
이와 관련해서 6개월 언러닝 후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버틴 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훨씬 더 상세하게 다룬 바 있습니다. 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아직 남은 것 — 솔직하게
완벽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지금도 게시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는 반드시 이런 생각이 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설명해야 하지 않나?" "이 표현이 오해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달라진 것은 그 생각이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 생각이 와도 제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그래, 아직 부족해. 그래도 올려."
또 솔직히 말하면, 제가 공들인 글이 반응이 없을 때는 아직도 조금 무너집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다른 독자들의 변화 경험을 읽으러 갑니다. 실제 독자들의 언러닝 후기, 믿음이 바뀐 순간들에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것이 다시 느껴지거든요. 그게 글을 계속 쓰게 하는 가장 작지만 강한 힘입니다.
저는 이것을 '완치'가 아닌 '함께 살아가기'라고 부릅니다. 완벽주의는 아마 제 평생의 동반자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지배하느냐,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선택하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바로 해볼 수 있는 실습 — '미완성 출판' 훈련
완벽주의 블로거에게 제가 직접 해보고 효과를 경험한 연습 방법을 공유합니다. 이름하여 '미완성 출판' 훈련입니다.
- 1단계: 지금 갖고 있는 초안 중 가장 오래된 것을 꺼내세요. 완성도는 상관없습니다.
- 2단계: 딱 20분만 다듬으세요. 20분이 지나면 타이머가 울립니다. 그게 끝입니다.
- 3단계: 글 맨 끝에 이 문장을 추가하세요. "이 글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상태로 나눕니다."
- 4단계: 게시 버튼을 누르세요. 누르고 나서 1시간은 댓글/반응 확인을 하지 마세요.
이 훈련의 목적은 '좋은 글 올리기'가 아닙니다. '올리는 행동에 대한 공포 반응을 낮추기'입니다. 뇌는 반복된 경험으로 학습합니다. 두려운 일을 하고도 괜찮았다는 경험이 쌓이면, 두려움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듭니다.
혹시 이 훈련을 해보셨다면, 또는 해보고 싶다면 — 댓글로 꼭 알려주세요. 어떤 글이었는지, 올리고 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 독자에게 묻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초안 폴더'에 잠들어 있는 글이 있으신가요? 또는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해보겠다고 생각만 하면서 아직 시작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저는 그 망설임이 게으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 오랫동안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면 안 된다'고 배워온 마음의 반응일 겁니다. 그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정말 지금도 유효한지 — 한번 물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조금씩 달라져온 분들이 있습니다. 완벽하게 변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분들이요. 당신의 이야기도 이 공간에 어울립니다. 댓글로, 혹은 그냥 조용히 읽으시면서도 괜찮습니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다음에도 완벽하지 않은 글을 올릴 겁니다. 그리고 그게 이 블로그의 가장 솔직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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