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고 말했더니 직장 스트레스가 줄었다

"모른다"고 말했더니 직장 스트레스가 줄었다

"직장 스트레스가 왜 이렇게 심한 걸까?" — 이 질문을 처음 진지하게 던진 건 작년 11월, 회의가 끝나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는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15분간 아는 척을 했습니다. 말하면서도 스스로 알고 있었어요. "이거 맞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극심한 피로를 느꼈죠. 몸이 아니라, 마음이.

이 글은 그 날 이후 2주 동안 진행한 실험의 기록입니다. 실험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회의실에서, 그리고 업무 대화에서 "잘 모르겠습니다"를 의도적으로 말해보는 것. 성공한 날도 있었고, 완전히 실패한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주가 지났을 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

왜 이 실험을 시작했는가 — 믿음 하나가 모든 에너지를 먹고 있었다

저는 꽤 오래전부터 이 블로그에서 완벽주의 믿음(B-001: "나는 완벽하게 마무리해야만 한다")을 해체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완벽주의의 가장 큰 연료 중 하나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모른다고 말하면 무능해 보인다"는 믿음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이 믿음은 꽤 어릴 때부터 심어진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하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었고, 직장에 들어와서도 그 패턴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회의에서 침묵하거나, 아는 척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잘 모르겠습니다"는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지 수치로 확인한 게 있었습니다. 미국 심리학자 앨리슨 우드 브룩스(Alison Wood Brooks)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유능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을 느낄 때 인지적 자원의 약 40%를 그 불안을 관리하는 데 소비한다고 합니다. 즉, 아는 척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뇌의 절반 가까운 용량을 낭비하고 있다는 뜻이죠.

또 하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2022)는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모른다'를 말하지 못하는 비율이 67%에 달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저는 그 67% 안에 완전히 속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시작한 직접적인 동기는 단순했습니다. 11월 둘째 주 화요일, 퇴근 후 저의 주관적 피로도를 10점 만점으로 스스로 평가해봤더니 8.5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특별히 야근을 했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회의를 3번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피로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실험 설계 — 14일, 3가지 규칙, 하나의 기록 방법

직장인이 노트에 기록하며 실험을 계획하는 모습
2주간의 실험, 모든 것을 노트에 적었습니다 (Photo: Unsplash)

실험 기간은 2주(14일)로 정했습니다. 언러닝 실험은 너무 짧으면 패턴을 관찰하기 어렵고, 너무 길면 지쳐서 흐지부지됩니다. 경험상 2주는 변화의 징조를 포착하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었습니다.

규칙은 3가지였습니다:

  • 규칙 1. 업무 대화(회의, 메신저, 대면 대화 모두 포함)에서 확실히 모르는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또는 "확인해보겠습니다"로 대답한다.
  • 규칙 2. 아는 척을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 순간을 인식하고, 그 충동의 강도를 1~10으로 기록한다.
  • 규칙 3. 매일 퇴근 후 그날의 피로도(1~10)와 특이사항을 3줄 이내로 메모한다.

결과적으로 14일 동안 총 37회의 "모르겠습니다" 발화 기회가 있었고, 그 중 24회는 실제로 말했으며, 13회는 또 아는 척을 해버렸습니다. 성공률 약 65%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실험이었지만, 바로 그래서 더 솔직한 기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날짜별 기록 — 회의실에서 처음으로 "모르겠습니다"를 말한 날

1일차 (월요일). 오전 팀 회의에서 신규 프로젝트 일정 관련 질문을 받았습니다. 평소라면 "아, 그 부분은 제가 좀 더 살펴봐야 하는데 일단은…" 하고 얼버무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규칙이 있었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그 부분은 제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확인해서 공유드릴게요."

3초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제 심장이 꽤 빠르게 뛰었어요. 그런데 팀장이 말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오후에 공유해줘요." 끝이었습니다. 아무도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퇴근 후 피로도: 6점. 평소보다 낮았습니다.

3일차 (수요일). 실패한 날입니다. 다른 부서와의 협업 미팅에서 마케팅 지표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 처음 보는 타 팀 과장님이 있었습니다. 순간 "모르겠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막혔습니다. 결국 두루뭉술하게 아는 척을 해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피로도를 기록할 때 스스로 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피로도: 8점.

이 실패가 중요한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아는 척하고 싶은 충동은 상대방이 낯선 사람일수록, 직급이 높을수록 훨씬 강해졌습니다. 충동 강도를 기록해보니 팀 내 동료에게는 평균 4.2점, 타 부서 혹은 상위 직급에게는 평균 7.8점이었습니다.

7일차 (일요일). 중간 점검일. 첫 주 피로도 평균은 6.3점이었습니다. 실험 전 같은 기간 추정 평균은 약 8점 내외였으니, 주관적으로는 꽤 의미 있는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다른 데서 왔습니다.

"모르겠다고 말한 날 밤엔 잠이 잘 왔다. 아는 척한 날 밤엔 자꾸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발견이었습니다. 아는 척은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퇴근 후에도, 잠자리에서도 계속해서 "내가 한 말이 맞긴 한 건가?"를 되뇌고 있었던 거죠. 이게 만성 직장 스트레스의 실제 구조였습니다.

10일차 (목요일). 처음으로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습니다. 의도적으로 "규칙을 지켜야지"가 아니라, 그냥 말이 나왔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정확히 모르는데,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가 바로 설명해줬습니다. 15분짜리 고민을 30초 만에 해결했습니다. 피로도: 5점.

14일차 (일요일). 실험 종료일. 노트를 펼쳐서 14일치 기록을 전부 다시 읽었습니다. 페이지가 생각보다 많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발견 — "모른다"는 말이 관계를 바꿨다

창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 직장인
혼자 앉아서 발견한 것들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Photo: Unsplash)

가장 예상하지 못한 발견은 스트레스 감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진짜 놀라운 건 관계 변화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를 말하기 시작한 뒤, 팀 내 한 동료가 저에게 먼저 말을 거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니가 모른다고 하니까 저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 한 마디가 실험 전체에서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심리학에는 취약성의 역설(Vulnerability Paradox)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취약함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신뢰가 높아지는 현상입니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 박사는 약 12년간의 연구를 통해 "인간이 진정성 있는 연결을 경험하는 것은 완벽함을 보여줄 때가 아니라 취약함을 드러낼 때"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연구를 읽을 때는 '그렇군' 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다르게 와닿았습니다.

또 하나의 발견은, 아는 척은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는 척으로 제시한 잘못된 정보가 팀의 방향을 살짝 틀어버린 경우가 최소 2번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돌아보며 인식했습니다. 그 당시엔 작은 일이었지만, 누적되면 팀 전체의 시간 낭비로 이어지는 구조였어요.

이 주제와 겹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쓴 21일간 매일 "모름"을 인정했더니 생긴 변화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실질적인 에너지 효율 전략이라는 것. 두 실험이 서로를 보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제가 왜 그토록 아는 척을 해왔는지, 더 깊은 층위를 보게 됐습니다. 단순히 체면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모른다고 하면 짐이 될까봐." "내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이건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도 연결되는 지점이었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혹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모름 공포'의 진짜 뿌리였던 것 같습니다.

2주 실험 결과 보고 — 숫자로 본 변화

솔직한 숫자부터 공개합니다:

  • 실험 전 2주 평균 퇴근 후 피로도: 8.1점 / 10점
  • 실험 기간 2주 평균 퇴근 후 피로도: 6.0점 / 10점
  • 피로도 감소율: 약 26%
  • 수면 중 업무 반추(회의 장면 재생) 발생 횟수: 실험 전 주 평균 4~5회 → 실험 후반 주 평균 1~2회
  • "모르겠습니다" 발화 성공 횟수: 37회 기회 중 24회 (65%)
  • 아는 척 실패 후 자괴감 지속 시간: 평균 2~3시간
  • 모르겠다 말한 후 후회한 횟수: 0회

마지막 항목이 저를 가장 놀라게 했습니다. 24번 "모르겠습니다"를 말했는데, 단 한 번도 나중에 "그걸 왜 말했지?"라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13번의 아는 척 중 11번은 집에 와서도 찜찜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의 99%는, 실제로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됐을 때 우리가 상상한 것만큼 끔찍하지 않다.

"모른다"고 말했을 때 정말로 무능해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나요? 14일 동안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3번은 "솔직하게 말해줘서 좋다"는 직간접적인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대부분 실제 위협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배운 것 — 체면 언러닝의 진짜 의미

2주 실험을 마치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직장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업무 자체가 아니라, 업무 중 '나를 관리하는 비용'에서 온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라고 부릅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처음 체계화한 개념으로, 우리는 타인에게 특정 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기가 일상적이고 자동적이 될수록, 우리는 그 에너지 소모를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냥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라고만 느끼게 됩니다.

체면 언러닝은 체면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체면이 아니라 두려움이 운전하고 있을 때를 알아채는 것입니다. 진짜 자신감은 "나는 모든 걸 안다"가 아니라 "나는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에서 옵니다.

이 실험이 완전한 성공이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직은 아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37번의 기회 중 13번은 여전히 실패했고, 특히 위계가 느껴지는 상황에서는 아직도 목이 조여드는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방향은 확실해졌습니다. 그리고 방향이 확실한 불완전한 실험은, 방향 없는 완벽한 결과보다 훨씬 값집니다.


🧪 당신도 이 실험을 해보세요 — 3일 미니 버전

2주가 부담스럽다면, 3일만 해보세요. 아래 순서를 따르면 됩니다:

  • Day 1. 오늘 업무 대화에서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몇 번 왔는지 세어보세요. 실제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단 '인식'만 합니다.
  • Day 2. 그 중 한 번만, 가장 안전한 상대(친한 동료, 팀원)에게 실제로 말해보세요. "그 부분은 제가 아직 잘 모르는데요."
  • Day 3. 어제의 경험을 메모합니다. "말하기 전에 든 감정", "말한 직후 반응", "퇴근 후 느낌" — 이 세 가지만.

3일 후, 이 세 가지 메모를 다시 읽어보세요. 거기서 당신만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혹시 당신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시면 함께 탐구하겠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모르겠습니다"를 말하면 정말 직장 스트레스가 줄어드나요? 반대로 평가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요?
Q. 완벽주의 직장인이 "모른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Q. 한국의 체면 문화 때문에 "모르겠습니다"를 말하는 게 특히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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