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우리는 늘 다짐합니다. "올해는 정말 달라질 거야." 다이어리를 새로 사고, 유튜브로 공부법을 찾고, 책을 한 권 더 삽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면 어떻게 되어 있나요? 대부분은 작년과 거의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더 많이 배웠는데도, 더 열심히 했는데도.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배움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잘못 쌓아두고'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 언러닝(Unlearning), 즉 배움보다 먼저 해야 할 비움의 기술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바뀌지 않을까?
변화가 어려운 이유를 우리는 흔히 '의지 부족'으로 설명합니다. "나는 의지가 약해서." "나는 원래 게을러서." 그런데 심리학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심리학에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뇌는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잘하는 게 없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 해낸 순간은 '운이 좋았던 것'으로 해석하고, 실패한 순간은 '역시 그렇지'라고 강하게 기억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워도 바뀌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믿음이 새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물을 부어도, 오래된 그릇이 오염되어 있으면 물도 오염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잘못 배운 것을 비우는 것이 먼저다."
그렇다면 그 필터, 즉 잘못 쌓인 믿음을 먼저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언러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언러닝 뜻 — 단순히 '잊는다'는 게 아닙니다
언러닝(Unlearning)을 처음 들으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냥 잊어버리는 거 아니야?" 하지만 언러닝은 망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망각은 수동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흐려지는 것이죠. 반면 언러닝은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과정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사실이라고 믿어온 이것이, 혹시 나를 가두는 믿음은 아닐까?"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그 믿음을 해체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언러닝의 3단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1단계 — 인식: "나는 이런 믿음을 갖고 있구나"를 알아차립니다.
- 2단계 — 의문: "이 믿음은 정말 사실인가? 언제부터 가지게 됐을까?"를 묻습니다.
- 3단계 — 재구성: 새롭고 더 유연한 시각으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나는 완벽하게 마무리해야만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글 하나를 쓰더라도,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더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낼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높은 기준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끝없는 미루기와 자기비판의 반복이었죠.
그 믿음을 해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한 번 해체하고 나니,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도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언러닝이란, 그 해체의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언러닝은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것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일입니다."
뇌는 정말 바뀔 수 있을까? — 신경가소성이 주는 희망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말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은 이 문장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합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란, 뇌가 경험과 반복에 의해 물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합니다 —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할수록, 뇌 안에서 그 경로가 강화됩니다. 마치 자주 걷는 산길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처럼요.
반대로 말하면, 오래된 길을 쓰지 않으면 점차 희미해집니다. 새로운 길을 반복해서 걸으면 그 길이 강화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고정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뇌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뀌고 있습니다.
언러닝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랫동안 굳어진 믿음도, 뇌의 새로운 연결을 통해 충분히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인식, 즉 "내가 이런 믿음을 갖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당신도 오랫동안 "나는 원래 이래"라고 믿어온 것이 있으신가요? 그 믿음이 사실인지, 아니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배워서 그냥 받아들인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언러닝이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혹시 이런 상황이 익숙하신가요?
- 열심히 하는데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 새로운 것을 배워도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먼저 온다.
하나라도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언러닝이 필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언러닝은 특별히 무너진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충분히 노력해왔는데도 뭔가 막힌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 더 필요합니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방향이 조금 잘못됐을 때, 더 빨리 달리는 것보다 한 번 멈춰서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제가 해체한 믿음들을 솔직하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완벽주의, 자기 의심, 쉬운 길을 택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 이것들이 모두 한때 제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입니다. 그리고 하나씩 해체해 나가면서 조금씩, 정말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언러닝은 나를 부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더 넓히는 일입니다."
오늘의 언러닝 실습 — '내 믿음 목록' 써보기
지금 당장 노트나 메모앱을 여세요. 그리고 이 문장을 완성해보세요.
"나는 _______ 해야만 한다."
"나는 원래 _______ 한 사람이다."
떠오르는 것을 3가지만 적어보세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그냥 써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목록이 언러닝의 출발점이 됩니다.
적고 나면 스스로에게 하나만 물어보세요. "이 믿음은 언제부터, 누구에게 배운 걸까?"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질문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시작하는 당신에게 — 비움은 용기입니다
언러닝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내가 믿어온 것을 해체하면, 나는 무엇으로 남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랫동안 붙들어온 믿음은 때로는 정체성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믿음을 해체한다고 해서 당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믿음이 당신을 얼마나 좁은 공간에 가두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됩니다.
언러닝은 천천히 해도 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한 가지 믿음에 "정말 그럴까?"라는 작은 의문 하나를 품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이미 언러닝의 시작입니다.
저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완전히 해체된 믿음도 있고, 아직 싸우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막막했던 것들이 조금씩 선명해졌습니다.
이 블로그는 그 여정의 기록입니다. 저 혼자의 기록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하는 기록이 되길 바랍니다. 함께 비워나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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