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원인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대부분 이런 답이 나옵니다. "과도한 업무량", "불충분한 휴식", "나쁜 직장 환경."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목록 어디에도 나를 설명하는 항목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번아웃 원인은 훨씬 깊은 곳에 있었거든요. 바로 "쉬운 길을 찾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오랫동안 미덕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저를 서서히 소진시키는 연료였다는 고백입니다.
장면 하나: 나는 왜 항상 어려운 쪽을 골랐을까
몇 년 전의 일입니다. 팀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존에 검증된 템플릿을 활용해 2주 안에 끝내는 방식.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직접 설계하고 구축하는 방식으로, 최소 두 달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두 번째를 선택했습니다.
팀원이 물었습니다. "왜 굳이 어렵게 가요? 첫 번째 방법도 충분히 좋은데."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쉬운 길을 택하는 건 게으른 거야. 진짜 실력은 어려운 길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그리고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더 배울 수 있잖아요."
두 달이 지났습니다. 프로젝트는 완성됐지만, 저는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고,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전형적인 직장인 번아웃 원인의 교과서 같은 상황이었지만, 저는 그때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좀 더 강했어야 했는데."
그 믿음은 제가 지쳐 쓰러지는 순간에도 저를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 소크라테스 심문의 시작
번아웃이 한계에 달했을 때, 저는 처음으로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해 보기로 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당연하게 걸어왔던 길 위에서 갑자기 멈추고, "이 길이 정말 내가 가야 할 길인가?" 를 묻는 것처럼요.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기존에 가진 믿음을 지지하는 증거만 무의식적으로 수집하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입니다. 쉽게 말하면, 저는 어려운 길을 택해서 성공한 경험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쉬운 길로 가서 충분히 좋은 결과를 낸 경험은 '그건 별거 아니었다'며 지워버렸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질문법으로 내 믿음 해체하는 5단계에서 소개한 방법을 그대로 저 자신에게 적용해 봤습니다. 다음은 그 질문과 답의 기록입니다.
Q1. 이 믿음은 어디서 왔는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를 즐겨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쉬는 저를 보면 "그렇게 편하게 살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하셨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렵게 공부한 학생이 칭찬받고, 손쉽게 정답을 찾은 학생은 "요령만 피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이 메시지들을 조용히, 완전히 흡수했습니다. 어려움 = 성실함 = 가치 있음. 이 등식이 제 안에 깊이 새겨진 것입니다.
Q2. 이 믿음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잠깐 멈칫했습니다. 증거를 대려고 했더니, 반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는 항상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훌륭한 엔지니어들은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덜 뛰어나게 만들지 않습니다. 어려운 길이 반드시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든다는 증거는, 사실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Q3. 이 믿음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 질문이 가장 아팠습니다. 솔직하게 써 내려갔습니다.
- 효율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동료에게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 같은 결과를 2배의 시간과 에너지로 달성하면서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 번아웃이 와도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며 회복 신호를 무시했다
- 번아웃 증후군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나의 믿음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 쉬운 길을 택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그 죄책감으로 더 어렵게 일했다
목록을 다 쓰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것이 미덕이 아니라 자해였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Q4. 이 믿음 없이 산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이 질문이 두려웠습니다. '쉬운 길을 찾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나태해지는 것 아닐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 믿음이 만들어낸 공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효율을 추구하는 것과 게으름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더 적은 에너지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남은 에너지를 다른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어렵게 사는 것이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다. 현명하게 사는 것이 진짜 성실함일 수 있다."
전환점: "열심히의 역설"을 마주한 날
어느 날 밤, 완전히 탈진한 채로 소파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기 위해 어렵게 살았는데,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열심히의 역설입니다. 더 잘하기 위해 더 어렵게 살았는데, 그 결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었습니다. 마치 차에 기름을 넣지 않고 더 멀리 가려고 엔진을 혹사시킨 것과 같았습니다. 연료가 바닥난 차는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번아웃 증후군 원인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매슬락(Christina Maslach)은 번아웃을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계속 소진을 강요받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저는 외부에서 강요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소진시키는 명령관은 제 안의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심리학 개념 하나를 짚어야 합니다.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억과 반응 패턴입니다. "쉬운 길은 잘못된 것"이라는 믿음은 제 의식 아래, 자동 반응 회로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의 순간마다 의식적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어려운 쪽을 골랐던 것입니다. 마치 스위치처럼요.
이 자동 반응을 끊으려면, 먼저 그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저는 번아웃이 된 후에야 겨우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요? 내 안의 무의식 믿음을 더 일찍 찾아낼 수 있었다면, 그 소파에 그렇게 긴 시간 누워 있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소파 위의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그 믿음 안에서 자랑스럽게 탈진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번아웃도, 어떤 의미에서는 저를 위한 신호였습니다.
번아웃 원인이 '나의 믿음'일 수도 있다는 것
직장인 번아웃 원인을 검색하는 분들께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당신도 어딘가에서 이런 목소리를 듣고 계신 건 아닌가요?
"이 정도로 힘들다고 쉬운 길을 택하면 안 되지."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내가 부족한 거야."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건 요령을 피우는 거야."
그 목소리의 출처가 상사도, 회사도, 주변 환경도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래전 어딘가에서 흡수한 당신 안의 믿음일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게으름이 아닙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현명하게 배분하는 것이 오히려 더 긴 호흡으로 좋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라톤 선수는 처음부터 전력질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전략입니다.
저는 이 믿음을 해체한 이후, 일의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검증된 방법이 있다면 먼저 활용합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요청합니다. 쉬어야 할 때 쉽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의 질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지쳐있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비슷한 믿음 찾기 — 3가지 질문
아래 질문을 천천히 읽으며, 떠오르는 것을 바로 적어보세요. 정답이 없습니다. 정직하게 쓰는 것이 전부입니다.
질문 1. 최근 6개월 안에 "쉬운 방법이 있지만 그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나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요?
질문 2. 어렵게 무언가를 해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의 일부가 혹시 "이렇게 힘들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건 아닐까요? 그 뿌듯함에서 '고통의 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질문 3. 만약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을 절반의 시간과 에너지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그 방법을 택하겠습니까? 만약 망설임이 있다면, 그 망설임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적고 나면, 당신 안에도 비슷한 믿음이 있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 것입니다.
마무리: 믿음을 해체하는 것은 자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쓰면서 과거의 저를 비웃거나 비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살기를 선택했던 그 시절의 저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저를 보호하려 했습니다. 성실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자기 자비(Self-compassion)라고 부릅니다. 나의 실수와 잘못된 믿음을 발견했을 때,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대신,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구나"라고 따뜻하게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언러닝은 과거의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지금의 나에게 더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 믿음이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알았다."
당신도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어딘가 뜨끔한 것이 있다면, 그 불편함을 잘 기억해두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 안의 믿음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자책의 연료로 쓰지 마세요. 호기심의 시작점으로 삼으세요.
어렵게 살기를 멈추는 것이 포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더 오래,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연습 중입니다. 함께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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