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자아정체성을 망치는 이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내뱉은 게 언제였나요? 아마 기억도 잘 안 나실 겁니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숨 쉬듯 이 말을 해왔을 테니까요. 자아정체성(Self-identity)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그 자아정체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단단하게 가두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이 문장을 방패처럼 들고 살았습니다. "나는 원래 감정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이야." "나는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이야." "나는 원래 끝마무리가 약해." 그리고 그 '원래'라는 단어 하나가, 제가 변화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있었다는 걸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챘습니다.

"나는 원래 이래" — 그 믿음이 작동하는 순간

장면 하나를 묘사해 볼게요.

회사 회식 자리입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기 생각을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누군가 웃기는 이야기를 하고, 박장대소가 터집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살짝 굳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서너 가지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 나는 원래 이런 자리가 어색한 사람이니까."

그 한 문장으로 모든 불편함이 정리됐습니다. 반성도, 변화의 의지도 필요 없었습니다.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설명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으니까요. 그 순간은 편했습니다. 하지만 그 편함이 쌓이면 쌓일수록, 저는 조금씩 더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의심하지 않았던 것 — 자아정체성의 뜻을 다시 묻다

자아정체성의 뜻을 사전에서 찾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일관된 인식과 느낌.' 영어로는 Self-identity 혹은 Personal Identity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강조했던 개념이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이 '일관된 인식'을 아주 이상하게 활용했습니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방향으로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체성 서사를 지키기 위해, 그 서사와 맞지 않는 경험은 무의식적으로 걸러내거나 예외로 처리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죠. 쉽게 말하면, "나는 발표를 못해"라고 믿는 사람은 발표를 잘한 경험은 '운이 좋았던 것'으로, 못한 경험은 '역시 나답다'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저는 수년 동안 이 편향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편향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를 안다는 것과, 나를 가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다."

혹시 지금 스스로에 대해 "나는 원래 ___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문장이 몇 개나 되시나요? 그리고 그 문장들이 당신에게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지금 한번 생각해보실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처럼 나를 심문하다 — 믿음 해체의 4가지 질문

언러닝은 믿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저는 "나는 원래 감정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이야"라는 믿음에 다음 네 가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Q1. 이 믿음은 어디서 왔는가?

곰곰이 떠올려보니, 중학교 때 기억이 나왔습니다. 감정을 크게 드러냈다가 "오버한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 그 이후로 저는 감정을 꾹꾹 누르는 것이 성숙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혹은 배웠다고 착각했습니다.

이 믿음은 제가 직접 검증해서 얻은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가 저를 정의하는 문장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Q2. 이 믿음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솔직히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는 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글로는 감정을 상당히 세밀하게 표현하기도 했고요. 오히려 "감정 표현을 못 한다"는 것은 특정 상황에서만, 특정 조건하에서만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부분적인 사실을 전체적인 정체성으로 과잉 일반화하고 있었던 겁니다.

Q3. 이 믿음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 질문이 가장 아팠습니다. "어차피 나는 감정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이, 감정 표현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가까운 관계에서 오해가 쌓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킨 날들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역시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믿음을 강화했습니다.

믿음이 행동을 막고, 막힌 행동이 믿음을 증명하는 — 자아정체성 혼란이 아니라, 자아정체성 감옥이었습니다.

Q4. 이 믿음 없이 산다면 어떨까?

처음엔 이 질문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믿음을 빼고 나면 '나'가 무엇인지 모를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고정된 자아정체성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나'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이 믿음이 없다면 — 저는 감정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실패'가 아니라 '연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사고 방식을 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라고 불렀습니다.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과 경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죠. 반대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형적인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의 언어입니다. 언러닝이 새로운 것을 쌓기 전에 먼저 비워내는 작업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 쌓인 자기 정의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봤자,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 정체성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전환점이 온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읽었습니다. 3년 전의 저는 "나는 원래 글쓰기를 못 하는 사람이야"라고 썼더군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 그 믿음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년 전의 나는 틀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도 틀릴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작은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난 인식의 전환이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다" — 이 두 문장의 차이가 당신의 미래를 바꾼다.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은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process)입니다. 영어로 Self-identity를 단순히 'I am'으로 고정하지 않고, 'I am becoming'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자아정체성 테스트를 찾아 헤매는 분들이 있다면, 그 테스트의 결과를 '확정된 나'로 받아들이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스냅샷일 뿐, 내일의 나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무의식 속 믿음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부르던 것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아직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것들'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는 차이였습니다.

자아 정체성 형성은 십대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어떤 믿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더 단단히 가두거나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 찾기 — 3가지 질문

지금 아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보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정직함만 필요합니다.

  • 질문 1. 지금 "나는 원래 ___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문장이 있다면 3개만 적어보세요. 어떤 상황에서 그 문장이 가장 자주 등장하나요?
  • 질문 2. 그 믿음이 처음 생긴 것은 언제였나요? 누군가 그 말을 했나요, 아니면 어떤 경험에서 스스로 결론 내린 건가요?
  • 질문 3. 만약 그 믿음이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이라면 — 오늘 하루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볼 수 있을까요?

세 번째 질문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나는 원래 운동을 못 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단 5분만 걷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뇌는 새로운 가능성을 경험합니다.

믿음 해체는 자기 비판이 아니다 — 자기 자비로 비워내기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혹시 이런 생각이 드셨나요? "나는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 혹은 "왜 이렇게 오래 그 믿음에 갇혀 있었지."

그 생각을 잠깐 멈춰 주세요.

우리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시점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실패의 고통을 줄여주고, 기대를 낮춰 상처를 예방했습니다. 그 믿음은 한때 나름의 역할을 했습니다.

심리학에서 자기 자비(Self-compassion)란 자신의 실수나 한계를 친한 친구를 대하듯 따뜻하게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자기 자비는 자기 합리화가 아닙니다. "괜찮아, 어쩔 수 없었어"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이제는 다르게 할 수 있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해체하는 것은 과거의 나를 비난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지금의 나에게 더 나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작업입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을 해체하는 것은, 나를 지우는 게 아니라 나를 더 넓게 정의하는 것이다.

자아정체성 혼란이 두렵다면, 그 두려움 자체도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나'라는 서사가 흔들릴 때의 불안함은, 변화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그 흔들림을 붙잡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흔들리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것 — 그게 언러닝의 방식입니다.

당신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믿어온 것들 중에, 오늘 처음으로 의심해볼 것이 하나라도 생겼다면 — 이 글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비우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닙니다.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

언러닝 첫 걸음이 막막하다면

무료 E-book: 언러닝 7일 실천 가이드
이름과 이메일만 남기면 바로 드립니다.

무료로 받기 →
📖

무료 E-book 받기

언러닝 첫 걸음 — 7일 실천 가이드
이메일로 바로 받아보세요.

무료로 받기 →

댓글

댓글을 남겨보세요.